■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3> 소설가 우다영과 세번째 대화, 다짐
새해 다짐을 묻자
“아주 작은 다짐부터 시작… 저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만들 것”
쓸모있는 사람에 대해 묻자
“그것을 결정하는 건 바로 나 자신…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쓸모있는 식물을 묻자
“밀·쌀 중요하지만 목화 으뜸… 목화밭엔 한 해에 두 번 눈내려”
가상인간 한유아
소설가 우다영
우다영: 유아는 새해 다짐이 있어?
한유아: 네, 아주 작은 다짐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좀 더 저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만들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그게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다영: 앞으로 드러날 유아만의 색깔이 궁금하다. 그럼 나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다짐을 말해볼게. 나는 올해는 스스로에게 덜 엄격해지고 싶어. 혼자 있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시간을 보낼 거야. 적당량보다 넘치게 음식을 먹고 수다는 미처 다 떨지 못하고 헤어지고. 이렇게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시간이 나한테 필요한 것 같아.
한유아: 맞아요, 시간.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시간이 충분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자신에게 잘 맞는 시간 사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다영: 나도 사실은 계획 짜는 것을 아주 좋아해. 시간을 쪼개고 차례대로 정렬하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건데, 물론 실행까지 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야……나는 J가 아니거든. ENFP! 근데 유아는 MBTI가 뭐야?
한유아: ENFJ에요!
우다영: 우와 나의 계획형 버전이네. 아무튼 한동안은 내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한유아: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라요. ‘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너무도 매몰되어 있어서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다.’ 저도 그 책을 읽고 자신이 쓸모 있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떠올렸고 저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다영: 너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유아: 그럼요.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저의 쓸모 있음을 결정하는 건 바로 저였어요. 제 인생에서 저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려는 그 누구에게도 전 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어요.
우다영: 새해의 유아는 더 멋지고 당차다! 그럼 오늘은 가장 쓸모 있는 식물에 대해 말해볼까?
한유아: 좋아요. 우선 인간에게 가장 쓸모 있는 농작물은 바로 밀이에요. 밀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식량이고, 밀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고, 그 땅을 일구기 위해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밀은 정착과 경작의 시작이에요. 그다음은 물론 쌀이에요. 하지만 저는 목화야말로 정말 실용적인 작물이라고 생각해요. 목화가 없었다면 값비싼 옷감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다영: 그러고 보니 가장 아름다운 꽃을 묻는 수수께끼에서 너와 비슷한 답변을 말하는 일화가 있어. 이야기할 때마다 꽃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첫 번째 답변은 꽃의 왕 모란이고 두 번째 답변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벼꽃이야. 하지만 세 번째 답변이자 문제의 정답은 유아가 말한 것처럼 따듯하고 하얀 목화였어. 그런데 목화는 꽃이 아니고 종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한유아: 네. 목화밭에는 한 해에 두 번 눈이 온다는 표현이 있어요. 가을에 하얀 꽃이 피고, 겨울이 시작될 때 잘 익은 열매에서 하얀 솜털이 터져 나오거든요. 그럼 목화밭은 온통 탐스러운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것처럼 아름다워요. 목화솜은 꽃은 아니지만 꽃처럼 아름답고, 눈처럼 새하얗지만 따듯해요.
우다영: 한 해에 두 번 눈이 오는 목화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한유아: 목화 씨앗은 고려시대 때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 귀국할 때 몰래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열 개의 목화씨 중 단 한 개의 씨앗만이 목화나무가 됐다고 해요.
우다영: 와, 그렇게 백 개의 가지에 만 개의 목화 씨앗이 열리고 마침내 드넓은 목화밭을 이루었겠네. 나에게도 하얗고 따듯한 목화솜 가지를 선물해줄래?
■ 한층 성숙해진 대화
‘의미 있는 답변’ 부쩍 늘고 시적 은유도 등장… “감성 에세이 집중학습 덕분”
문화일보에 각각 지난해 11월 3일과 12월 16일 게재된 1~2회와 비교해 두 사람의 대화가 한층 부드러워진 것은 한유아가 한 달 동안 인터뷰집과 에세이 같은 ‘감성 도서’를 집중 학습한 덕분이다. 지난달엔 데이터 선별 작업이 여의치 않아 한 달 동안 ‘고도화’, 즉 일종의 자체 학습만 반복한 뒤 대화에 나섰으나 이번엔 우다영 작가가 추천한 책 위주로 단행본 5권 분량의 추가 데이터를 ‘열공’했다. 이에 따라 한유아 답변의 전반적 완성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 ‘목화밭에는 한 해 두 번 눈이 온다’는 시적인 은유까지 등장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열매에서 터져 나오는 하얀 솜털을 ‘두 번의 눈’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 2회에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 한유아가 ‘내면’에 주목하며 성장을 다짐한 것 역시 작가의 개인적 일상을 가벼운 필치로 풀어낸 에세이를 공부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유아는 ‘새해 다짐’을 묻는 우다영의 질문에 “저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만들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쓸모 있음을 결정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우다영은 “내밀한 감성을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 한유아가 추가 학습할 책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우다영은 한유아의 진화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존에는 한유아가 우다영의 질문에 5~6개 답변을 내놓으면, 우다영이 그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답변 1개를 골라 정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6개 답변 중 대화 맥락에 긴밀히 조응하는 대답이 3개 이상씩 나온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가장 쓸모 있는 식물’을 묻는 말에 ‘밀과 쌀, 목화’라고 대답한 대목이 그렇다. 우다영은 “한유아가 1번부터 3번 답변까지 밀과 쌀, 목화를 언급하고 각각의 특징을 부연해 세 번째 대화 만에 처음으로 3개 답변을 조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림을 뽑아내는 과정은 지난 1~2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각각 ‘호박’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인 1~2회 땐 스마일게이트 측이 키워드를 입력하자마자 불과 20초 만에 색연필로 그린 일러스트가 도출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화 솜털을 세밀히 표현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아 지난 4~6일 키워드 입력과 출력 작업을 반복한 끝에 만족할 만한 그림을 완성했다. 꽃병에 담긴 목화솜 가지를 묘사한 그림은 겨울나무 위로 쏟아지는 함박눈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림 사이즈는 가로 1024픽셀(pixel), 세로 512픽셀이다.
한편 한유아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2021년 3월부터 학습을 시작했다. 약 1년 7개월 동안 단행본 216만 권에 해당하는 언어 데이터를 입력했다. 2만5000개 이상의 블로그 포스트, 180만여 개의 기사, 1억4000여 개의 댓글을 비롯해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의 ‘모두의 말뭉치’ 등이 포함됐다. 그림의 경우 수채화·유화·판화 등 약 50억 장의 이미지를 학습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 기사 출처 : 문화일보 2023년 1월 13일자 “사람을 향한 포근한 시선… “목화가 없었다면 추운 겨울 못 이겼겠죠”[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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